10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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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3:22-26

그 후에 : 니고데모와 대화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유대 땅 : 이스라엘은 크게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3 지역으로 나눕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 유대 지역에 속한 땅입니다. 예수님이 자라신 곳은 나사렛으로 갈릴리 지역에 속한 땅입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 변화시키신 수가 성은 사마리아 지역에 속한 땅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무엇을 하셨나요? 세례를 베푸시더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셨다는 기록은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발견됩니다. 그런데 요4:2은 예수님께서 직접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요4:2

아마도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유대 지역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에 세례 요한도 에논이라는 곳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인물입니까? 세례 요한은 30세가 되도록 일반 청소년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선지자로서 사람들 앞에 두각을 나타낼 때까지 광야에서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포도주를 평생 입에 대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을 때 세례 요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대단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부근 사람들이 다 그에게 나아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작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메시지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고, 갈릴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대제사장들과 바리시인들의 양심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는 그의 외침에 양심이 찔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우뚝 섰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처음 한두 달 동안은 사람들의 눈에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 별 구별이 없어 보였습니다. 두 분이 하시는 일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으니라’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 요한도 물로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이 행한 것이기는 하지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만 몰려갔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등장하면서 유사해 보이는 사역 때문에 두 인물을 놓고 비교하게 되었고, 결국은 어느 한편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둘 중에 누가 진짜 메시아인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두 달 동안의 진통 끝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 반면에 세례 요한의 주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홀로 버림받는 것 같은 외로운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점을 언제로 잡는가 하면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때입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등을 보면 요한이 옥에 갇힌 그 시점부터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일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힘으로 구약은 막을 내리고, 복음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본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요3:24

지금 이 때는 바로 그 분기점 직전입니다.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구약이 막을 내리고 복음의 새로운 장이 열리려고 하는 그 중요한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세례 요한은 위대한 회개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점입니다.

사탄은 그 전환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탄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충동하여 세례 요한으로 하여금 그의 사명을 잊고 예수님께 반역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의 사역이 크게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순간입니다.

요한은 요한대로 따로 사역하면서 서로 비난하고 욕하게 되는 크나큰 불상사가 일어날 위험이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주변 환경으로 인하여 그의 믿음과 자세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모습이요, 가장 본받을 만한 종의 자세가 바로 이 세례 요한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을 향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겸손하게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알량한 일을 이루어놓고도 스스로 너무 대견하게 여겨 도저히 자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의 심정입니다. 좋은 집에 이사를 갔다거나, 자녀가 공부를 잘했다거나, 좋은 회사게 취직을 했다거나, 손자 손녀가 태어났을 때, 그것을 드러내고 싶고 뻐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겸손은 우리 신앙의 마지막 열매다”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쳔이 제일 마지막으로 열매 맺는 것이 겸손입니다.

대하 26장을 보면 웃시야가 나옵니다.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 유다를 통치했던 왕이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양육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을 때는 형통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웃시야의 시대를 유다의 마지막 전성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웃시야가 점점 더 세력이 강성해지니까 그만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대하26:16

웃시야 왕이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던 제사를 자기가 스스로 드리겠다고 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말년에 문둥병으로 별궁에 거하다가 부끄러운 모습,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 마지막 인생을 마치는 것을 봅니다.

웃시야의 사례에서 겸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겸손하다, 겸손하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30년은 겸손할 수 있습니다. 40년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자기 자신의 강성한 모습을 바라보고 교만에 빠져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겸손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남들의 평판에 대해 참을 수 있는 힘입니다. 남들이 비웃고 비평하는데도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25,26절을 보니까 세례 요한이 가장 가슴 아픈 말을 제자들로부터 듣습니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3:25-26

정결 예식이란 종교적인 이유로 씻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세례를 가리킵니다. 어느 날 세례 요한의 제자와 한 유대인 사이에 정결 예식, 즉 세례 문제를 놓고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논쟁을 하는 중에 그 제자의 마음이 몹시 상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다투던 유대인이 “너희 선생보다 예수가 훨씬 더 인기가 있다. 봐라.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가지 않느냐?”라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상한 제자들이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건너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리고 가더이다”

말씀의 문맥을 보면 뭔가 불편합니다. 항의성도 있고 질투의 감정도 섞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부 예수님에게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자들은 세례 요한을 존경하고 따랐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처음부터 예수님께로 가 버린 자들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제자들은 아직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기 선생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크면 클수록 예수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선생이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고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혜성처럼 나타나 백성들의 존경을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예수님한테는 은근히 진투를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세례 요한이 자신의 사명을 잘 수행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려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개선할 때에 사람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고 노래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분노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무섭습니다. 시기심과 질투심이 마음을 장악하면 자신을 죽이고 남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뿌리는 멸망의 씨앗입니다. 이와 반대로 기쁨과 감사, 찬양과 기도는 성령의 씨앗입니다. 우리는 어떤 씨앗을 우리의 마음 밭에 뿌릴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늘 마음에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원망 불평 시기 질투의 씨앗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어둠의 씨앗이 들어오려고 하면 기쁨과 감사, 찬양과 기도로 무장하여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아주 검소한 분이 계셨습니다. 돈은 있지만 직장이 바로 옆이기도 하고 해서 평소에 차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지론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평생 동안 자가용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이 차를 샀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한번은 그 집 자녀들이 자가용이 없다고 난리를 쳤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수십년 고수해온 지론이 흔들리더란 것입니다. 주변의 이야기에 대해서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어떻습니까? 주위에서 제자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귀중한 교훈을 배웁니다.

악한 마귀는 제일 먼저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면 우리 주변을 움직입니다. 아내를 움직이고, 자녀를 움직이고, 제자들을 움직입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 환경으로 인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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