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3:17-21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물론 이 아들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진 모든 것을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목적으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나 하면 심판을 위해서라면 아무 것도 하시지 않고 가만히 두어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포함한 온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예수를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1-2그리스도 예수께서 율법의 정죄를 받아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하여 다시 정죄함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심판을 받느냐, 아니면 구원을 얻느냐 하는 것은 종말에 가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 믿음의 여부에 따라서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벌써 심판과 사망의 길에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와 절망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귀에게서 놓여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은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문제는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중대차한 시안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도, 심지어는 1시간 뒤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 할 때 ‘바로 지금’ 이 예수님을 믿을 때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차차 믿을께요’ 라고 말하면서 미루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구원받지 못한 채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에는 긴박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고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열정적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였다가 회심하여 복음 전도자가 된 멜 트로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술집에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일찍이 알코올과 도박에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여러 직장을 전전했지만 번번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심한 자책감에 빠져 술을 끊겠다고 결심했지만 그의 주벽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아이의 장례를 치른 후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셨습니다. 1897년 그는 자살하기 위해 시카고에 가서 자기 신발을 팔아 마지막으로 술을 사 마시고 미시간 호수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를 발견하고 퍼시픽 가든 선교회로 데리고 갔습니다. 선교회 총재인 헤리 먼로는 그를 긍휼히 여겨 기도해 주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밤 당신을 구원해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원하시면 기도하십시오.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받아 들이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마음의 빗장을 열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멜 트로터는 악몽 같았던 27년간의 알코올과의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회심한 지 3년 만에 그는 미국 미시간 주의 그랜드 래피즈에서 노숙자 선교회의 책임자로 임명 받았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그는 전국에 66개의 노숙자 선교회를 조직하여 예전의 자신처럼 삶의 목적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밑바닥 삶을 사는 인생의 실패자였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자 구원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 앞에서 놀랍게 쓰임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흑암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셨음을 알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악한 마귀와 저주와 형벌에서 벗어나 축복과 은혜의 삶을 살게 하는 유일한 소망임을 전하여 무지한 영적 맹인인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해야 합니다.
전도는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9빛은 멸망에 처해 있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빛이며 구원의 빛이십니다. 그 분이 찾아와서 지옥문을 가로막고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데도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무관심했습니다. 죽였습니다. 자기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으며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모르는 데서 오는 기막힌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눈물과 아픔이 따라오지 아니하는 저 높은 나라, 늙음과 죽음이 접근하지 못하는 저 찬란한 나라에 가서 하나님 자신이 누리고 계신 생명을 함께 누리는 축복을 일컬어서 영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도 깊고 높아서 단순히 우리를 멸망치 않게 하시는 것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다 없애고 거지가 되어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단지 문을 열어 주고 집안에 데려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아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긴 다음, 온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들을 집안에 들여놓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들의 행복을 위해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데까지 갔습니다.
영생이란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지 않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모든 행복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뜻이요, 변치 않는 약속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서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와 간절한 소원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금세기의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패커는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의 복락을 하나님 자신의 복락과 동일시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자신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 되기까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사랑을 베푸는 상대방이 만족스러울 만큼 행복해지는 것을 보지 않고는 자신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약간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이 자신이 누리고 계시는 그 영생과 복락을 함께 누리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 행복하지 못하실 것이다”
탕자가 돌아오기를 문 밖에서 날마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나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들을 헤매고 다니는 목자의 비유에서 이 사실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사랑은 태초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 끝날까지 변함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길이와 넓이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확증하기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의 넓이를 최대한 넓히기 위해 멸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 가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사랑의 폭을 연장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는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3:20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미워하기 때문에 빛으로 나아오지 않고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완악한 죄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 빛으로 나아오기 싫어하는 것은 빛으로 인해 자기의 죄와 악한 행위가 밝히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3:21여기에 또 다른 무리들이 있습니다. 빛을 미워하여 끝없이 어둠 속으로 빠져가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진리를 따르며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고 빛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행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의 빛을 좇아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말씀을 좋아하고 예배를 사모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 간의 교제를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자들을 예배를 멀리하고 찬송을 싫어하며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합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서 “내가 빛을 떠나서 어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마음에 진리의 빛을 거스르는 미움과 분노, 잘못된 생각과 판단이 가득하다면 주님께로 나아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더해 주십니다. 늘 빛 가운데 거하고 진리를 따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한 번 뿐인 인생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무한한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감격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진리의 말씀을 기억하고 언제나 성령 충만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