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 민21장 사건입니다.
민수기에는 곳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평기라고 불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데 그들이 입만 열면 불평을 합니까? 참 답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광야에서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잊어버리고 사소한 일에도 원망,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원망, 불평은 우리의 신앙을 파괴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 불평하면 미움의 불뱀, 다툼의 불뱀이 찾아와서 우리를 물어 버립니다. 불뱀에 물리면 고난과 질병, 저주 가운데 고통 당하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원망,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자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감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원망, 불평할 일이 생기더라도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주님께 가지고 나와 기도하며 절대 감사, 무조건 감사, 한평생 감사를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민2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매, 불뱀이 이스라엘 진을 습격하여 수많은 백성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기도하니, 불뱀만 물러간 것이 아니라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놋으로 불뱀의 모양을 만들어 장대에 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뱀을 쳐다본 사람마다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단다는 것을 그들의 지은 죄의 원인이 된 사건을 공개하고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놋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고, 무엇을 높이 단다는 것은 저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사람을 나무에 달아 죽이는 형벌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를 죽일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놋뱀을 매다는 생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생각이 아닙니다. 그들은 뱀에 물리면 죽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놋뱀을 보지 않은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 경험으로는 적어도 이 광야 불뱀에 물린 자는 살 수 없어. 흥, 놋으로 뱀을 만들고 그것을 보면 산다고, 그런 미신적인 생각이 어디있어? 눈으로 본다고 해서 뱀의 독이 빠지나? 이런 비과학적인 방법이 어디있어?’ 이렇게 교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놋뱀을 본 자들은 다 살아났습니다.
비과학적이든, 미신적이든 간에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한 자들은 모두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사건과 연결시키면서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 불순종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 멀리하고, 하나님을 더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그 결과 모두 죄의 독에 쏘여 죽어 갑니다. 마치 불뱀이 습격한 것처럼 모든 인간들은 죄의 독으로 죽어가고 이미 많이 죽었습니다.
이때 우리 인간이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높이 달아 누구든지 그를 보기만 하면 죄의 독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를 바라보아야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죽었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없이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을 미신이라고 하든지, 비과학적인 일이라고 비난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예수님을 쳐다보는 운동입니다.
"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며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사45:22매 순간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삽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2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2:1,예수님이 어떤 주라고 합니까? 믿음의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또 병든 자, 뱀에 물린 자, 죽어가는 자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온전케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죄의 자리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을 바라봅시다.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내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낙심한 사람이 있습니까?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인간적인 발버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삽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서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면 삽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하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생명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에게 나아오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고집 때문입니다.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하나님께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고 싶은 교만이 그들을 죽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나는 지금 죽어 있으며, 하나님의 방법 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구경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저기에 달린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존심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병원에 가니까 거기에서는 자존심이 통하지 않더라고요. 죽어 가는데 무슨 자존심이 필요합니까?
군중 가운데 가만히 있으면서 교회에 왔다 갔다하는 구경꾼으로 있지 마십시오. 아무 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있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의사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의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자존심을 다 버리고 내가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도가 비과학적이니 미신적이니 하면서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결국 교만한 자는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실 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바꾸거나, 얼굴을 바꾸시지도 않습니다.
단지, 우리 안에 새로운 성품을 주십니다. 전에 없던 하나님의 성품을 주십니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입니다. 단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새로운 성품을 심어 주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으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으며, 새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새겨진 이 새로운 성품은 어느 신랑이 신부와 결혼하면서 준 결혼 선물과 같습니다. 처음 결혼을 약속할 때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습니다. 정표만 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있을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모든 생활의 약속이 됩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장가드실 때 지참금으로 당신의 성품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장가들겠다고 하십니다. 금반지나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우리 안에 심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결혼 선물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조그마한 성품의 변화가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이것이야 말로 앞으로 모든 영광과 존귀를 소유할 증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여러분 안에 조그마한 변화가 생겼습니까? 그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가 없이 모든 것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실망스럽습니까?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증표입니다.
계속 눈에 보이는 결과만 찾아서 좇아다니면 결국 있던 믿음도 잃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생긴 이 작은 변화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말씀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주지 않고 오직 새로운 성품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고 해서 마음 문을 닫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안에 모든 귀한 것들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자라게 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모든 어려움 가운데 인내하고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