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6-8
태어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육체로 태어남이요, 두 번째는 영으로 태어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이후 태어난 모든 사람은 육체의 생명만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육체의 생명은 이 땅에 속한 연약하고 유한한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잠시 살다가 예외없이 죽음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유한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아담의 죄의 결과로 인한 것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그러나 둘째 사람 곧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인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5:21원어로 보면 거듭남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아노델의 첫 뜻은처음부터입니다. 두 번째는다시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아주 중요한 뜻인데 위로부터라는 말입니다. 거듭남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뜻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하고 완벽하게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생,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개는 개를 낳고, 소는 소를 낳고,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을 뿐 사람을 낳을 수 없습니다. 종은 바뀌지 않습니다. 육을 아무리 훈련시키고 도를 닦고 관리한다고 해서 육이 영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인 것처럼 육은 육이고 영은 영입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하면 된다. 산에 가서 백일기도 하면 된다. 금식하면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거듭남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종교적인 훈련, 노력, 열심이 곧 여러분의 믿음이라고 착각하면 할수록 더 허무하고 갈급하고 괴로워집니다. 인간 안에 허구와 죄와 더러운 것은 교양이나 지성으로 아무리 감싸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변화됩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3:7예수님께서 거듭나는 문제를 이처럼 진지하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람은 반드시 한 번 더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가 못 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에 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님은 그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시고 아셨습니다.
“니고데모야, 내가 보니 너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많구나. 너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인간에게는 내세가 있다고 믿고,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있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율법을 잘 지키면 들어갈 수 있을까? 그것으로 안심할 수 있을까?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꼭 알아두어라 육신으로 사는 것은 인생의 서론에 불과할 뿐이다. 인생의 본론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곳에 절대로 못 들어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착한 마음으로도 안됩니다. 율법을 지킴으로도 안 됩니다. 오직 거듭나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늘 성령 충만을 받아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다가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8영적인 세계에 관한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동문서답으로 반응을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인간적인 연약함을 아신 예수님은 어렵고 심오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이야기 하실 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사건을 가지고 쉽게 말씀하기를 좋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화법을 비유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때 깊은 밤의 정적을 깨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문간을 심하게 흔들면서 지나갔는지도 모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8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께서 ‘자 니고데모 선생, 보시오.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마치 지나가는 저 바람과 같소’라고 설명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바람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는 것을 예수님의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비성입니다.
바람은 신비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람이 어디서 생겨서 어디로 불며 어떻게 소멸하는지는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추적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인공위성을 통해서 바람의 생성 과정과 진로를 추적하는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관찰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설명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과학적인 지식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에 근거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람은 신비스러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실성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미한 사람이 지나가도 우리는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사람에게도 이 신비성과 사실성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그러려면 성령님이 말씀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릴 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신비스러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동시에 반드시 삶의 변화라고 하는 사실적인 증거가 따라옵니다.
우선 먼저 중생의 신비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거듭남은 너무도 신비스러운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심은 말씀의 씨앗이 싹이 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과 말씀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여 그처럼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신비임이 틀림 없습니다.
거듭남은 신비성뿐만 아니라 사실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늦가을 어두워져 가는 저녁에 바람이 지나가면서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가랑잎을 살짝 건드립니다. 아무리 가만히 만져도 그 가랑잎은 사각 사각 소리를 냅니다. 이와같이 바람은 반드시 소리를 냅니다. 바람은 소리를 낼 뿐 아니라 지나간 흔적을 남깁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존재를 알려 줍니다. 이것이 바람의 사실성입니다. 거듭난 자에게도 비슷한 사실성이 꼭 따라갑니다. 그것은 삶의 변화입니다.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따라오는 변화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 변화를 숨기지 못합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처음 3, 4 개월은 아이가 누구를 닮았는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외가 쪽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친가 쪽을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부모들이 자기를 닮았다고 서로 우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의 나이가 한 살쯤 되어 윤곽이 뚜렷해지면 누구를 닮았느냐를 가지고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거듭났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이 자라면서 하나님의 아들답게 이목구비가 뚜렷해 집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선악을 분별할 줄 압니다. 자기의 소속이 어디인가를 놓고 절대 혼란을 겪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도 아니요, 더 이상 세상에 속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죄에 대한 태도가 단호해 집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속에 있어서 죄를 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요일3:9거듭난 사람은 삶의 목표를 세울 때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던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 세상 사람들 눈에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말씀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전에는 술을 마시면서 기분을 풀고, 골프, 낚시를 하면서 인생사는 맛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것들이 만족은 주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거듭난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삽니다. 말씀의 은혜를 못 받으면 심령이 갈급해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가지고 그의 인자하신 음성을 들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의 권위가 어디에서 나옵니까? 기도교의 신뢰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바로 거듭난 사람들의 변화된 삶에서 오는 것입니다. 변화된 삶이 기독교의 능력이요,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에 아이언 사이드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당시에 능력있는 전도자이자 설교자로 시카고의 무디 교회 담임 목사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쓴 회고록에는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역을 갓 시작할 때였습니다. 어느 주일 오후. 샌프란시스코 베이라고 하는 지역을 걸어가고 있는데 형제단에 속한 오륙명의 형제들이 시장 입구에서 전도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던 사이드를 알고 있었던 그들은 그에게 전도 간증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어떻게 예수 믿게 되었고, 예수 믿고 나서 자기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이야기한 다음, 오직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원자요 세상의 소망이라고 소리를 높여서 외쳤습니다. 전도를 하면서 가만히 보니까 사람들이 줄 둘러섰는데 제일 앞 쪽에 정장 차림의 신사 한 분이 자기 말을 듣다가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뒷면에다가 무엇이라고 적는 것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그 신사가 아이던 사이드에게 다가와서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면서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그 당시 자유주의 신학계에 널리 알려진 교수였습니다. 20세기 초는 성경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 신학에 동조하면서 교회는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명한 사회학자요 불가지론자인 그가 아이언 사이드에게 명함을 내밀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주일 오후 4시에 아카데미 과학관에서 선생님과 토론할 것을 제의합니다. 제목은 불가지론과 기독교입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말을 듣고 아이언 사이드는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그 도전에 응하지요. 그러나 제가 선생님에게 토론을 약속하는 대신 저도 한 가지 요청을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그 토론장에 나오시면서 두 사람을 데리고 나오셔야 합니다. 과거에 구제불능이라고 할 정도로 부끄러운 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변화 받아 죄를 멀리하고 새 사람이 되어서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사람 둘을 데리고 오십시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남자고 또 한 사람은 여자여야 합니다. 남자는 과거에 알코올 중독자였거나 형무소를 갔다 온 전과자면 더 좋겠습니다. 과거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가정이 가난해서 어려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살다가 사창가에 빠져서 젊음을 걸레 조각처럼 살았던 여자면 더 좋겠습니다. 그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 과거를 회개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됩니다. 선생님이 이런 사람 둘을 데리고 오시면 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변화된 사람, 과거에 처참한 생활을 벗어버리고 지금은 소망을 갖고 새 생활을 시작한 남자와 여자를 100명 정도 데리고 오겠습니다.”그랬더니 옆에 있던 자매 한 사람이 “목사님, 저도 그 100명 중에 포함시켜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가 “목사님, 저는 그런 사람 60명을 데리고 올께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형제는 “저도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서 토론장에서 우리 예수님 이름을 높이면서 한번 대결해 봅시다”라고 끼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도전장을 던졌던 그 신사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선생님, 없었던 일로 합시다”라고 한 마디를 하고는 도망치듯 사라졌습니다.
기독교의 능력은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들의 변화된 삶에서 비롯됩니다. 변화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캡슐이 교회 안에 많이 있을 때 기독교가 세상에 짓밟히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는 길은 우리가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람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우리가 일으키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혼란한 사회는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과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021년 10월 23일 오전 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