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4-5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이 말씀을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잘못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육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가르치는 율법 학자였지만 영의 세계에 눈이 어두워 가장 기본적인 말씀도 이해하지 못하고 육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니고데모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2-1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7-19"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9-10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깨닫고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도덕적인 사람, 이토록 존경받는 선생도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도둑이나 창녀 같은 죄인들만 거듭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고, 율법의 의로도 흠이 없어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도 거듭나야 합니다. 니고데모 같이 늙은 사람도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개 사람들이 거듭난다는 말을 도덕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름하던 사람이 노름을 끊고 가정생활에 충실하면 그 사람이 거듭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도덕적인 결단 이상의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새 영과 새 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서의 약속입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36:25-27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정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가 제물을 드리며 자신의 죄를 자복하면 제사장이 물을 뿌리면서 그가 그 죄에서 사하여진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깨끗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으로 그들이 깨끗케 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지만, 그들의 악한 마음이 변화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 약속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즉, 지금까지 겉으로만 깨끗함을 받고 중심은 전혀 새로워지지 못했던 변화가 아니고, 마음에 물을 뿌리고 영이 새로워지는 변화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인 결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심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늙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에 씻음을 받지 아니하고, 그 영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도덕적인 결단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무리 니고데모 같은 존경받는 선생이라고 할지라도 사마리아의 부도덕한 여인과 마찬가지로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이사를 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그 마음에 하나님의 성품이 심기게 됩니다. 이것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중심에 하나님의 성품이 없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죽은 것입니다. 니고데모같이 많은 학식이 있더라도 그의 본성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을 누가 원치 않겠습니까? 원하기는 하지만 방법을 모르니까 오직 율법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거듭남이라는 개념은 다른 종교나 철학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독특한 개념입니다. 모든 종교는 행위로 구원 받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어떤 의식을 드리고 선행, 수련을 하고, 도를 닦으라고 하지 근본적으로 다시 거듭 태어나서 만들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율법을 주장하는 종교는 더욱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은 출발 자체가 잘못됐으니 그것을 다 없애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니 힘듭니다. 하고 있는 것을 조금 더 잘하라고 하는 것은 쉽지만 근본부터 잘못됐으니 다시 하라니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거짓 종교와 참 종교, 거짓 믿음과 참 믿음의 갈림길을 발견합니다.
구약 종교, 율법에 대해 선입관이 많은 니고데모는 이 말씀에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태어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5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의 핵심은 물과 성령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선행, 노력, 종교적 습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성령에 의해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선택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한 것입니다. 그 분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발견하고 사랑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하나님을 모를 때 이미 나는 택함을 받았고, 사랑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믿음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로 시작되는 찬송이 있습니다. 신앙은 이런 의미에서 은혜요, 감동입니다. 율법과 내 노력과 의지로 했다면 자랑할 것이 많고 주장할 것이 많지만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듭남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감싸주시고 내게 역사하시고 나를 인도해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성령으로 난다는 말은 성령님께서 내주하심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물로 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물세례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물로 세례를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7:37-39에서"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7:37-39여기서 생수의 강, 즉 물은 성령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말을 성령으로 태어 난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야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새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6또 하나 물은 말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약1:18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거듭납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씨로 뿌려서 그 씨가 움트면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1:23우리가 영으로 거듭날 때 말씀과 성령이 수고를 합니다. 세상에서 한 생명을 낳기 위해서 어머니는 죽음과 같은 해산의 진통을 겪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 죽음이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 안에서 새 생명을 싹트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만으로는 안됩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듭나는 것은 성령과 말씀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은 씻는다는 의미에서 회개라는 말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부모로부터 육적인 탄생이었지만, 두 번째는 탄생은 회개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으로 임하셔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다 씻고 말씀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어미 닭이 계란을 품어 병아리가 부화하듯이 성령으로 내가 다시 태어남으로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이 안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할 때 진짜 거듭남, 제 2의 출생이 시작됩니다. 제 1의 출생에서 부모님의 유전인자를 받듯이 제 2의 출생에는 하나님의 유전인자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죄의 인자가 없어지고 생명의 인자가 내 안에 다시 시작합니다. 죄성으로 부패했던 내 모습이 회복합니다.
인간의 속성은 배신이었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새롭다. 거듭났다. 변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다고 하더라고 겉으로 보면 우리의 몸을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주름진 얼굴은 그대로 남아 있고, 성경이나 습관도 그렇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새 것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새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영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아이가 하는 일은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출생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부모가 다 합니다. 어머니가 열 달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몸 속의 생명을 키워 세상에 내 놓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에도 산모가 모든 값을 다 치룹니다. 태어나는 아이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낳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따지면 평생 교회 다닌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때 하나님께 그 이유를 따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준비를 하나님이 다 하시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 책임지셔서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한 가지는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믿으려는 결단입니다. 믿으려는 결단은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에게 순응하는 일입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병아리가 부화 시기가 되면 알 안에서 껍질을 깨려고 아직 여리디 여린 부리로 온 힘을 다해 쪼아댑니다. 그것이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댄다는 뜻의 ‘줄’ 입니다. 이 때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아차려 바깥에서 부리로 알 껍질을 쪼아줌으로써 병아리의 부화를 돕습니다. 이렇게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합니다. 줄과 탁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 생명은 온전히 탄생합니다.
병아리가 부화를 시작하면 일정 시간 내에 껍질을 깨고 나와야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미 닭이 너무 일찍 껍질을 깨 주어도 병아리가 죽거나 기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미닭은 필요 이상의 큰 구멍을 내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행위는 알 속의 병아리에게 있습니다. 부화전의 병아리는 알 속에서 자신이 때어날 때가 되었음을 스스로 어미닭에게 지속적으로 알립니다. 병아리의 그런 행위가 없으면 어미닭은 결코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새 생명으로 거듭남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태어난 시기도, 지역도, 성도 어느 것 하나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육적인 탄생처럼 영적인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영적인 갈급함과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을 주시고 내 영혼에 대해 제 2의 탄생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와 믿음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오시는 것이 은혜고, 내가 하나님께 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오실 때 내 마음에 하나님께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낳아주시는 것입니다. 내 부모가 나를 낳았듯이 성령이 나를 낳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귀가 아프도록 설명을 듣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거듭나는 것입니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학자가 있습니다. 김영길 박사입니다. 그 분은 미국에서 유학하는 중에 결혼한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 예수를 꼭 믿어야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가서 앉아 있어도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열심히 읽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기독교 서적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성경과 신앙 서적을 펴 놓고 도대체 왜 예수님이 꼭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왜 꼭 예수를 믿어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나가다가 갑자기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려면 죄 없는 누군가가 죽어야 하고, 죄인을 대신해 죽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하지만 신이신 하나님은 죄인을 위대 대신 죽을 수가 없다. 사람이 아니시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고,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그의 어두운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자기 부인을 불러 놓고 자기가 깨달은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이 김영길 박사가 거듭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자동차의 핸들을 잡고 가는데, 하늘이 달라 보였습니다. 어제 본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새 생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이상한 현상이 생깁니다.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싶고, 찬양을 부르면 눈물이 납니다. 가슴이 흔들립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집니다. 당신 안에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새로운 비전, 능력, 생각이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도를 하면 할수록, 찬송을 부르면 부를수록 더 커집니다. 내 안에는 그런 것이 없지만 어디선가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생깁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거듭남이요, 기적입니다.
2021년 10월 22일 오전 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