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2:12-15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행하신 후에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 가셔서 며칠을 묵으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근처의 저지대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이곳을 사역의 중심지로 삼으시고 활동하시며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2:13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남자들은 매년 세 차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지켜야 했습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유월절)과 칠칠절(오순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신16:16-17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을 집중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중심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만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3차례 나옵니다. (2, 6, 11장) 우리가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 반이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요한복음에 예수님이 유월절을 3번 지킨 사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을 기록한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서에는 사역 초반에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적어도 두 번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은 본문에서는 주님의 첫 번째 성전 정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2:14-15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먼 곳에서도 옵니다. 먼 나라에서도 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소나 양을 끌고 오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생도 무척 심했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흠 없는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는데, 이렇게 먼 거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끌고 오다보면 제물로 드릴 소나 양이 병들게 되거나 흠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번거롭게 이렇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 번거로울 뿐 아니라 이렇게 해서는 짐승들이 병들기도 할테니, 그러지 말고 돈으로 가져오자고 했던 것입니다. 성전 앞에서 소를 사고 양을 사고 비둘기를 사면 참으로 편리할 뿐더러 흠 없는 제물도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성전 앞에 장사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돈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통용되는 돈은 드라크마 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보면 돈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당시 로마의 돈에도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이런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진 돈을 바칠 수 없다고 해서 드라크마와 1대 1로 교환할 수 있는 세겔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드라크마를 가지고 와서 세겔과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자연스럽게 돈을 바꾸는 환전소가 생기고, 제사드릴 짐승을 살 수 있는 거래소가 성전 앞에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방객들이 늘어나고 천문학적인 돈이 굴러들어 오는 것을 보고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환전으로 인해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 머리에 들어오자, 그들은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였습니다.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어낼 구실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룩한 성전을 개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돈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돈 버는 일에 재미를 붙이면서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서 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뜰의 넓이는 약 14 에어커로 우리나라 평수로 18,000평 정도 됩니다. 그 뜰은 세 부분, 유대인의 뜰, 여인의 뜰, 이방인의 뜰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 맛을 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얼마 후 그 이방인의 뜰을 시장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뜰에는 사방을 대리석으로 붙여서 만든 난간 베란다가 있었고, 그것을 떠 받치는 네 줄로 된 기둥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그 베란다 밑에는 그늘이 지기 마련이고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난간을 중심으로 장사꾼들은 한쪽에서는 돈을 바꾸어주고, 다른 쪽에서는 비둘기나 양등을 팔았습니다. 이처럼 예배를 드려야 될 거룩한 곳이 욕심을 채우는 시장 바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돈에 눈이 어두워지면 못할 짓이 없나 봅니다. 돈에는 절대 만족이라는 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벌면 벌수록 사람을 미친개처럼 헐떡이게 만듭니다.
돈의 맛을 안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정도로 손을 털 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궁리 끝에 그들은 너무도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성전 화폐로 교환을 할 때 환전 차익을 받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일반 화폐 십만원을 성전 화폐로 환전하면 오만원 정도만 주고 나머지 오만원은 환전 차익으로 챙긴 것입니다.
그 당시 성전에 들어가려면 한 사람당 성전 화폐로 반 세겔을 내야 했습니다. 반 세겔이면 그 당시 노동자가 이틀 일해서 벌어야 하는 돈입니다. 그런데 다른 화폐를 가지고 오는 사람은 그 돈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환전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반드시 세겔로 바꾸어서 내야 들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더 지독한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정결한 짐승을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짐승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오면 검역을 담당한 제사장들이 그들을 막고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통과를 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성전 안에서 파는 비싼 짐승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기록에 보면 어떤 때는 밖에서 사는 값의 16배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잔인한 착취입니까?
왜 돈을 바꾸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순수한 돈을 바치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순수한 제물을 바치려는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에는 성전이 돈 바꾸는 사람들, 소 팔고, 양 팔고 비둘기파는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가 편의만을 추구하다보면 예배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너무 편리한 것, 간편한 것만 추구하다 보면 예배자의 자리를 떠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물은 희생 제물이라고 합니다. 제물에는 우리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라는 그 자체가 희생입니다. 많은 것을 희생할수록 예배는 더욱 예배다워집니다.
중국 처소 교회는 지도자조차도 변변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날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희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설교를 듣겠다고 이틀, 사흘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두 세 시간 거리만 되어도 멀다고 안 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말씀을 듣겠다고 차를 타고 12시간, 14시간을 온다고 합니다.
예배도 얼마나 긴지 모릅니다. 3-4시간을 족히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거의 자정이 됩니다. 그래도 기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중국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가 된 것은 희생이 있는 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가장 많은 기적이 일어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 밖에서 족히 1-2시간을 줄을 서서 추운 겨울날에도 벌벌 떨며 기다릴 때였습니다. 예배 1시간 전부터 뜨겁게 찬송을 드릴 때였습니다.
예배는 언제부터 시작됩니까?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것을 기대하면서 나아가는 그 순간부터 예배는 시작됩니다.
왜 한국 교회가 점점 힘을 잃는지 아십니까?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에디오피아에서부터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여건 때문에, 우리의 환경 때문에,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자리를 떠난다거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리를 떠나는 어리석은 백성은 없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021년 10월 16일 오전 6: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