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9-11
연회장은 포도주 맛을 감별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입니다.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인들이 갖다 준 물을 먹고 자신이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향긋하고 신선한 포도주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본문에는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적은 우리가 믿고 순종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맹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는 순간까지도 그 물은 맹물이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갖다 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물을 도로 퍼다 줄 바에야 왜 항아리에 넣었다 퍼내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의 과정입니다. 맹물을 들고 하인들이 연회장 앞에 갔는데 그 과정은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연회장이 그 물을 먹는 순간 그것은 향긋한 포도주였습니다. 그러면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언제였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은 이렇게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기적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과정입니다.
겨울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온 천지에 하얀 눈이 덮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눈은 아침에 한꺼번에 온 것이 아니라 밤새 내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이고 축복이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을 보면서 우리는 구원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말은 나쁜 물이 좋은 물이 되었다거나 물의 악취가 제거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분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본질적 변화입니다. 내 인격의 성숙이나 양심이 청결하고, 도덕성이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나와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옛 사람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본질적 탄생의 의미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물 떠온 하인의 사건을 통해 두 번째 배우는 것은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그 비밀을 알지 못했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그 비밀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받은 자만이 압니다. 옆에서 구원받은 사람을 아무리 구경해도 알 수 없습니다.
물 떠온 하인들은 연회장이 감동할 때 흐뭇하게 웃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포도주 맛을 본 사람은 큰 일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의 현장을 경험한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분명히 자기 손으로 맹물을 떠다 주었는데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힘이 없는 것은 체험적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체험적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실제를 경험하고 내 삶의 본질이 변화되는 경험이 힘이고 능력이며, 감격이며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위기와 어떤 고난에서도 승리하게 하는 힘이 이 거듭남의 비밀입니다.
하인들은 물만 떠다 주었습니다.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물을 떠다주는 행동을 하찮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순종의 행동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숨은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기적과 이사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순종하십시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치에 맞지 않아도, 뜻을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뜻은 나중에 알면 됩니다. 순종하면 뜻은 나중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인들처럼 묵묵하게 순종하면 됩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포도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찾으라. - 지금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찾으면 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부르짖으면 됩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6-9절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믿음을 붙드시고 첫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다른 표적은 직접 공개적으로 행하시고, 직접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표적만은 예수님은 그냥 잔치 자리를 즐기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 일도 안한 것 같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내가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주님이 쉬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잘 때도 복을 주시고 일하십니다. 잠잠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나타내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우리를 축복하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2:10하나님은 언제나 마지막을 위하여 최상의 것을 남겨 두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차이점입니다.
세상 나라는 좋은 것으로 시작해서 나쁜 것으로 끝이 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것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그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끝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죄와 관련된 것이 얼른 보기에는 좋게 보입니다. 예를 들어 술 마시는 것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술을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여인이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면 취하게 되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결국 자세가 흐트러져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맙니다. 남자들도 처음에도 넥타이를 매고 점잖게 마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어떻게 합니까? 코가 비뚫어지게 마시고는 토하여 옷에 다 묻고 나중에는 쓰레기 같은 인생이 됩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잠23:29-32)
처음에는 술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번쩍번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는 무엇이 된다고 합니까? 뱀이 되고, 독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죄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가장 나쁜 것을 남겨 둡니다. 혹시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죄에 빠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지금이 그 사람 인생의 전성기입니다. 범죄한 백성은 지금이 최고 전성기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어려운 위치에 놓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좋은, 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모습니다.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잘 믿는 사람들,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하는 인생들은 마지막에 가서 다 역전됩니다. 요셉, 다윗, 다니엘이 다 그랬습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망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뒤집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11주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만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그 포도주를 마셨지마는 그것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자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포도주만 맛보고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주님이 하신 것을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까?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는 한 풍성한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돌 항아리에 있는 물처럼 있는 한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바꾸셔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기질과 성품을 바꾸셔야 합니다. 색깔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손 씻는 항아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런 외적인 행위가 아니고 하인들이 했던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행동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잔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포도주만 마셨습니다. 포도주만 마시고 즐거워했습니다. 잔치가 엉망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잘 된 것으로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순종한 자들의 감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포도주가 없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주님은 더 근본적인 난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작은 것으로 거절당했을 때 실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포도주가 모자란 것은 주님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믿음을 가진 자만이, 주님의 영광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