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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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요2:6-8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은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 조용히 예수님께 가서 저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얘기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어떻게 들으면 거절로 들리고, 어떻게 들으면 어머니를 무시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노여워하거나 섭섭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그 말을 거절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때에 응답하실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해석입니다. 해석을 잘하면 인생이 즐겁습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때에 응답하실 것을 믿은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을 들은 즉시 종들에게 얼굴을 돌렸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2:5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높이 달라. 그것을 보는 자마다 구원을 얻으리라”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보기만 하면 낫는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쳐다보지 않은 사람은 다 죽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놋뱀을 본 사람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기적을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적을 베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막6:3-5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면 여러분의 생각이나 신념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소위 전문가의 말도 따라가지 말고 오직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십시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84년 직업군이 다른 네 그룹에 10년 후 세계경제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해 보라고 했습니다. 10년 뒤 현실에 가장 근접하게 예측한 그룹은 다음 중 어디일까요?

①전직 재무부 장관들 ②글로벌 기업 CEO들 ③옥스퍼드대 학생들 ④청소부들.

10년 뒤, 이코노미스트가 답변을 검토해 본 결과, 1등은 놀랍게도 청소부 그룹이었습니다. 참고로 전 재무부 장관 그룹이 꼴찌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재무부 장관은 경제 분야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의 예측이 청소부의 예측보다 정확하지 못했던 걸까요.

노리나 허츠(Hertz· 48) 영국 런던대(UCL) 교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고, 그건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틀립니다. 뮤추얼 펀드 매니저의 70%가 주가지수 상승률보다 낮은 실적을 내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소비자들이 전문 투자 자문가에게 받은 부적절한 조언 때문에 매년 200억~300억 유로의 손해가 발생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조건 의심하거나, 의사를 만나지 말고 병을 자가 진단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직함'에 이끌려서 맹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로만 하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요2:6-7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 유대인들은 부정을 제거하고 죄를 제거하는 정결 예식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잔치 집에도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두 세통 드는 항아리 6개를 준비하여 물을 가득 채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다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말씀에 순종하여 아구까지 채웠다는 것입니다.

아구까지 채우매 : 헛수고하게 만들고, 이해되지 않는 일 조차도 흘러넘치게 순종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아구까지 채우라고 지시하신 일이 없습니다. 단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실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을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하인들은 󰡐손님들이 다 와서 더 이상 물이 필요 없는데 왜 물을 채워야 합니까?󰡑라든지 󰡐왜, 언제, 어떤 물을 채우라는 겁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작은 봉사를 하면서도 너무 많은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인들에게서 배울 점은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구까지 물을 채웠습니다. 이 말이 제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따지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물을 채우라고 한다면 할 수 있는 반응이 세 가지 정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좋을 정도로만 적당히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기적도 적당히 일어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는 척만 할 뿐입니다. 물통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하는 척하지만 정작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조용히 물을 아구까지 채웁니다. 이런 순종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요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 연회장은 음식 감별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연회장에게 물을 갖다 주었다가는 야단을 맞을 수 있습니다. 너는 연회장인 나를 뭘로 뭐고 보고 발 씻는 물, 손 씻는 물을 입에 넣고 감별하라고 갖다 주는 거야?

물을 항아리에 채우는 것은 그저 물을 채우는 것이기에 갈등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말은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물을 발 씻고 손 씻는 데 갖다 주라면 그것은 상식이기 때문에 별로 갈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말은 그 물이 󰡐포도주󰡑라는 뜻입니다. 물을 포도주인줄 믿고 갖다 주라는 말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때 사람은 갈등하게 됩니다.

내 이성과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 말에 갈등하고 따지게 됩니다. 의심하고 주저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봉사하다가 주저앉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 하인들의 위대함은 그 물이 맹물임을 알고도 순종하여 갖다 줬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실 때 항상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볼 때는 하인들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까? 하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까? 하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냥 앉아서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의 흘러넘치는 순종이- 아구까지 채우니, 온전한 순종-연회장에게 갖다 주어라 - 갖다 주었더니 하나님의 기적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기적이 나타나기 위해선 사람들의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킬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안드레의 순종과 어린 아이의 5병 2어를 가지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헌신이 필요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감나무 밑에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의 충성이 있어야 하고, 움직임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때 보면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귀한 충성과 순종이 있을 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요11장을 보면 나사로를 살린 사건이 나옵니다. 이 나사로를 살린 사건을 보면 참으로 재미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 앞에 가서 “나사로야 나와라”그러면 나사로가 “쨘”하고 나오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셨습니까? 천둥치고 번개가 번쩍이고 지진이 나고 돌문이 다 깨지는 극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가셔서 제일 먼저 하셨던 일이 무엇입니까?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무덤을 막아 놓았던 돌문을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큰 돌로 무덤을 막아놓았습니다. 여인들의 힘으로 그 돌을 옮기기는 무척 힘듭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몸이 썩기 시작했습니다.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런데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돌을 옮기라는 말씀을 지금 시대로 말하면 무슨 이야기 입니까?

사람이 죽어 이미 시체를 관에 넣고 땅에 파묻었는데, 그 묻었던 것을 다시 파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 묘지를 파고 다시 꺼낼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돌을 옮기는 것 그 자체가 그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순종을 한 것입니다. 순종했더니 나사로가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순종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순종이 나사로를 살렸고, 안드레와 이름없는 소년의 순종과 헌신이 5병2어로 5천명이 넘는 사람을 실컷 먹이고 12바구니를 남겼습니다.

2021년 10월 14일 오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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