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2:1-5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중 첫 표적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114복음서에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35가지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이 35가지 밖에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20:30"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21:25따라서 선별해서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우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힙 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35가지만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중 특별히 7가지 선별하여 기록하고 7가지 기적을 표적이라고 합니다. 표적은 일어난 기적 그 자체보다, 그 멧세지가 중요합니다. 숨은 뜻, 영적 진리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님께 기도하면 다 살겠구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다 살리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서 육신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요6:40그렇다면 예수님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는 것,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영광의 주님이심을 믿는 것이 더욱 중요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오병이어 사건도 예수님은 얼마든지 이런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양식을 해결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후에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았을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요6:26-27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의 참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썩을 양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하는 양식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첫 표적 (7표적 중)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 표적은 요한복음 전체의 성격과, 요한복음의 다른 표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적을 행하신 날이 언제입니까? 사흘째 되던 날입니다. 유대인은 주일을 첫째날, 월요일을 둘째날, 화요일을 셋째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첫 주간 중 화요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둘째날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으시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다른 제자들은 미처 체험하지도 못한 예수님 공생애 초기의 사건이며,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첫 기적의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 수많은 사람 앞이 아닙니다. 갈릴리 가나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작은 마을, 신랑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왕의 신하 등) 평범한 사람의 혼인잔치였습니다.
요즘 성지순례에서도 가나는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다면, 특별히 여행객이 찾지 않을 소박한 동네입니다. 그렇게 소박한 동네에서 혼인잔치가 베풀어집니다. 누구든지 혼인 잔치에 훌륭한 분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훌륭한 분이 이런 초라한 자리에 오시겠나 했는데, 예수님은 갈릴리의 작은 마을, 평범한 사람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으셨을 때 가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여러 가지 사역을 하셨지만 그 핵심을 하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도주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첫 번째 기적은 바로 포도주 사건입니다. 공생애 마지막 날에 있었던 최후의 만찬에서도 포도주가 등장합니다.
포도주 기적의 의미를 풀어나가는 핵심은 결혼식과 포도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먼저 성서 시대 유대인들의 결혼 문화를 꼭 알아야 합니다.
한 총각이 처녀를 보고 마음에 들면 그는 아버지를 졸라서 잔치 비용을 받아서 이 돈으로 처녀의 집에 가서 잔치를 벌입니다. 이때 처녀의 가족과 친구와 천척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성대한 잔치가 일주일 동안 열립니다. 함께 먹고 자고 마시는 잔치에서 처녀는 총각을 유심히 살필 것입니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 날, 총각은 처녀 앞에 포도주를 놓습니다. 이때 처녀가 그 포도주를 마시면 총각을 남편으로 맞이하겠다는 결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시지 않으면 총각을 잔치 비용만 날리고 풀이 죽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녀가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 총각을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아버지 집으로 가서 신부와 함께 살 처소를 예비합니다. 신부는 처소를 예비하러 간 신랑이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서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이렇게 일정기간 떨어져 사는 정혼 기간이 있었습니다. 보통 1년 정도였는데, 이 기간 동안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지만 육체적으로는 처녀와 총각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던 순간도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마리아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내였지만 육체적으로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였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알고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기적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최후의 만찬의 포도주로 사역을 마무리 하시면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이해됩니다.
신랑 예수님은 신부를 찾으려고 잔치를 베풀러 오신 것입니다. 당시에 혼인 잔치에는 여러 음식이 있었지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처녀 앞에 놓은 포도주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 여러 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잔치의 사이드 메뉴일 뿐입니다. 메인 메뉴는 예수님이 마지막에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다음 날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의 의미를 포도주와 연결해 들려 주셨습니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막14:24-25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피, 즉 예수님의 베푸신 결혼 잔치의 포도주를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정혼한 신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로써 종결된 것입니다.
마지막 유월절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을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처소를 예비한다는 표현이 결혼식과 관련된 표현임을 바로 압니다. 하늘에 올리우신 예수님이 지금도 신부인 우리와 함께 살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과 관련된 표현을 빌리면 ‘이 땅에 신부를 모으러 오셔서 잔치를 베푸시고 특별히 마지막 날에 포도주를 준비해 놓으시고 처소를 예비하러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 예수님은 포도주를 마시고 예수님과 정혼한 신부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돌보시도록 하셨습니다.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 예수님은 처소를 다 예비한 뒤에 반드시 신부를 찾으러 오십니다. 정혼식만으로는 아직 결혼식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바로 정혼한 신부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과 결혼식을 하는 날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그 날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날이 되는 것입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계19:9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정혼한 신부입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흔들릴 수 없는 정체성입니다. 그러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원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소원은 바로 신랑되신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곧 재림의 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결혼식이 이뤄지는 날이 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과연 신부가 신랑과의 결혼을 목 놓아 기다리듯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만약 우리 마음에 ‘나는 이 땅에서 잘 누리고 잘 살고, 다음 세대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분명히 신부로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신부의 첫 번째 소원이 신랑과의 결혼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신부를 보고 뭐라 말할 것입니까? 그녀는 아마 무늬만 신부든지, 음탕한 신부든지, 아니면 가짜 신부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푼 잔치의 하이라이트인 포도주는 마시지 않고 사이드 메뉴만 즐긴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까요? 그날은 신랑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아버지가 정하는 것입니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1:6-7성서 시대에 신랑은 주로 밤에 찾아왔기 때문에 정혼한 신부들은 깨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신랑이 찾아올 날이 가까이 다가오면 신부를 올리브 등잔에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 놓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지혜로운 처녀는 신랑의 방문을 대비해 등불의 기름을 잘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는 기름이 모자라 당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