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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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1:18-23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대면하여 깊은 교제를 나눈 모세조차도 하나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33:20

그런데“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한은 세례 요한인데, 우리가 세례 요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그가 ‘위대한 설교자’라는 오해입니다.

그 시대에 세례 요한의 설교가 얼마나 충격적이고 영향력이 있었던지 그가 하는 설교를 듣기 위해 세례 요한이 말씀을 증거하던 광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까지 왔습니다. 사람들은‘세례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하고 착각할 정도였고 ‘구약시대에 하늘에서 불을 내리던 엘리야가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그는 선지자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충격과 깊은 영향력을 주는 설교를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오해는 당연합니다.

두 번째, 세례 요한은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다 라는 오해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회개하라’고 외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선지자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별명이‘세례 요한’이라는 것도‘그는 분명히 세례를 주기 위해 세상에 온 사람이다’라고 하는 오해를 받을 만 합니다.

세 번째, 세례 요한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그는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개혁가였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세례 요한은 그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헤롯왕의 부도덕과 비리에 대항하여 생명을 내걸고 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틀린 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용감히 외치다가 목이 칼에 잘리어 은쟁반에 놓이는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어느 시대의 인물보다 정의감에 불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합니다.

세례 요한의 삶을 우리가 이야기 할 때 그가 정말 위대한 설교자였고 세례를 주는 분이었고 사회 개혁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그렇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의 한 현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설교를 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고, 세례를 주기 위해 온 것도 아니고, 사회를 개혁하고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세상을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의 삶의 목적과 본질은 무엇입니까?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1:31

그의 사명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자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자기 생애 전체를 던져서 증언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세례 요한의 삶이었습니다. 그가 잉태되었을 때부터 그의 목이 잘려 죽는 순간까지도 그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사회 정의나 설교가 아닌 오직 예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에 미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얼마나 지혜롭게 살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고, 모든 사람이 볼 때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도 잘 믿는다’그저 이 정도 수준에서 자기 삶을 정리하고 삽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세례 요한을 통해서 제 자신이 은혜 받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 이 부분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에 미친 사람입니까?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꿈을 꿔도, 길을 걸어도, 누워도, 병들어도, 내가 건강해도, 실패해도, 성공해도, 살아도, 죽어도 내 몸 안에는 오로지 예수만 있습니까?

세례 요한은 오직 예수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균형이 깨지거나 편협한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영향력 없는 삶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제 입을 통해 세례 요한을 이야기를 또 하고 있을 만큼 너무나 위대하고 값진 삶을 살았습니다.

한때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던 이영도 목사의 글을 읽고 저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설교는 교단도, 교파도, 총회도, 노회도 인간관계도 없이 오직 예수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단이 있고 교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꾸 가려집니다.

하나만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미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엔 사랑에 미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에 미칩니다. 새벽에 눈 뜰때 부터 잠잘 때 까지 오직 돈 버는 데만 집중합니다. 예술이나 학문, 정치에 미친 사람도 있습니다. 마약이나 폭력, 컴퓨터 게임에 미친 사람도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무엇에 미쳤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합니다.

미친 사람의 특징은 겁이 없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하다가 그만 두는 법이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미친 사람의 특징은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에게서 예수에 미친, 예수의 증인이 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합니다. 첫째 특징이 19절에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1:19

사람들은 󰡒네가 누구냐?󰡓하고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당신의 직업은 무엇 입니까? 당신은 어디서 태어나 무엇을 하다가 앞으로 죽으면 어디로 갈 겁니까?󰡑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 삶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삶에 대한 대답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있어야 가는 겁니다. 목적이 없이 가는 것을 가리켜 󰡐방황󰡑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가도 목적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방황할 뿐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요1:20

세례 요한에게서 발견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당신이 누구요󰡑라고 말할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말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이 말은 거짓되고 과장된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기를 거부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이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첫 대답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세례 요한에게서 배울 것은 정직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라고 선언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의 위대함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 제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와 베드로를 주목했을 때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3:12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6

저는 오늘 여러분이 아닌 것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분명히 말하는 용기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를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기득권, 명예, 조작에 대해서󰡐아니오󰡑라고 말하십시오. 사람들의 잘못된 기대에 대해서도󰡐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1:2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낸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시려면 반드시 선지자 엘리야가 그 앞에 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림과 동시에 엘리야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엘리야냐”라고 재차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번에도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세례 요한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엘리야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11:14

그러면 왜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했을까요? 이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례 요한이 지닌 엘리야로서의 영광이 사람들의 눈에는 가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 안에 있는 메시아로서의 영광이 베일이 가려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또 다시 질문했습니다.

네가 그 선지자냐 (21절)

그 선지자 하면 유대인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신18:15

이 예언에 의하면 장차 세상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한 분이 출현하실텐데 그 분이야말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둔 사람들은 행여 요한이 그 선지자가 아닌가 하고 물어본 것입니다.

두 번째, 세례요한에게서 배우는 것은 23절에 나타납니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1:23

󰡐그러면 너는 누구냐? 너는 네 자신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느냐?󰡑라는 질문에 세례 요한은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런 칭호를 붙여 주더군요󰡑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입니까?󰡑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요한은󰡐성경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이라는 뜻으로 이사야의 이야기를 인용해서 말합니다.󰡐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두 번째 메시지는 당신을 정의할 때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정의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당신에게 부여해준, 하나님이 부여해준 사명을 가지고 여러분의 삶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만나볼 수 있도록 높아진 것을 낮게 만들고, 패인 곳은 매우고, 굽은 길은 곧게 만드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역할, 소리를 하는 사람이다󰡑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예수를 증거하며 예수를 위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이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건강하던, 병들던, 가난하던, 부유하던, 유명하던, 무명하던 예수를 보여주는 삶이길 축원합니다. 󰡐나는 그것을 위해서 성경에 말하는 대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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