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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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5-17

본문에 나오는 요한은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면, 헤로디아의 철없는 십대 어린 딸, 살로메의 손에 들린 소반 위에 그 머리가 얹혀 나와 연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비극적인 선지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어떤 작가는 살로메 라는 이름의 희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극찬하셨지만, 그는 예수님이 등장 직후에 그 모든 인기를 송두리째 예수님에게 뺏겨 버리고 삼십 대의 젊은 나이로 감옥에 갇혔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야말로 비운의 선지자였습니다.

만일 세례 요한이 한 100년만 더 일찍 태어나서 활동할 수 있었더라면 구약에 등장하는 몇몇 선지자들처럼 그의 후광은 오랫동안 사그러지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비췄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등장한 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역을 시작하시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작은 등불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시시피 등불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 초저녁이나 한밤 중에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이면 그 등불의 운명은 단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데 그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해가 떠오르기 바로 직전의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매우 동정이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역사에 등장한 누구보다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위대하다고 하시면 정말 위대한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는 세례 요한을 통해 그 위대함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함은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 했습니다.

"요한이 그에(예수님)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1:15

요한이 한 일이 무엇이라고요? 그(예수)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이르되. 원어 성경을 보면‘증거하다’라는 말이 현재형으로 쓰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과거형이 아닙니다. 옛날에 끝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우리가 들림 받으면 더 이상 증거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때에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1:15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뒤에 오신 분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를 찾아와서 한 말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1:36-38

천사 가브리엘에 마리아를 찾아와 수태고지를 할 때 세례 요한은 이미 여섯 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보다 먼저 계셨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 만 아니라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입니다. 비록 육신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지만, 천지 창조 이전부터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2-3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1:4-5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감당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1:31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1:6-8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명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홍콩 순복음 교회는 중국의 목회자들이 홍콩까지 오는 교통비를 비롯하여 교육비 일체를 후원하여 공부를 시키는데, 이를 위해 홍콩 순복음 교회에서 많은 성도님들이 중국을 마음에 품고 헌금을 해서 중국 현지의 목사님들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같은 헌신이 어루어져서 지금 중국에는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의 크리스천이 1억명이 넘고, 광저우에 있는 한 교회에는 2만 여명이 모입니다. 공산주의 정권하에서도 복음이 빠른 속도록 전파되어 각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결코 그쳐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확산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그날이 심히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6-17

충만이라는 말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가득차다, 충분하다, 차고 넘치다 라는 뜻입니다. 물이 가득차서 넘쳐 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충만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차고도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충만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은혜를 충만히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충만히 받지 못하고 살면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늘 불평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게 됩니다.

이것은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옛 사람의 모습을 내던져 버리고 새사람답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충만한 은혜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며, 그것을 우리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이처럼 스스로도 충만하시면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에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충만한 데서 은혜 위의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 위의 은혜라는 말은 은혜의 부단한 계속성을 뜻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진리는 모세가 준 율법보다 월등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알리시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히 지킨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고, 그에 따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의 삶은 고통과 절망과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마치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형수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무 소망없이 절대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값없이 구원받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 평안과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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