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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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1:9

창세기 1장 2절은 천지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지 창조 이전의 모습을 공허와 혼돈 그리고 흑암,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특징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합니다. 그리고 극도로 혼돈된 삶입니다. 또한 어둠 속에서 방황합니다.

공허와 혼돈 그리고 흑암 가운데서 천지 창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3~5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지창조의 시작은 빛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3-5

빛이신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순간 모든 공허와 혼돈 그리고 흑암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천지 창조의 새벽이 열립니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으로 하루는 해 뜨는 아침에서 시작하여 해지는 저녁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천지 창조를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루란 해지는 저녁에서 시작하여 해 뜨는 아침으로 이어집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은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두움이 가득찬 세상에 오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요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던 세례 요한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사람들은 참 빛되신 예수님을 환영하기는 커녕 거절했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인간의 본질은 ‘거절󰡑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절을 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거절에 대한 상처, 환영받지 못한 것으로 인한 상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존경쟁이라는 사회 속에 뛰어 들어 오면서 거절을 겪습니다. 배신과 거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학교나 직장에서, 애인이나 친구들로부터 거절을 당합니다.

이 거절감의 상처는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것은 열등감으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나아가서 거절감의 상처는 우울증을 만들고 자살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거절감은 죄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영하십니다.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환영하지 않습니다. 싫어하고 꺼려하며 제외시켜버립니다. 소외시키는 것입니다. 거절을 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소외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외감 속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지 않은 까닭은 인간 속에 있는 죄가 거절했기 것입니다. 진리와 빛, 생명과 구원을 거절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외롭고 고독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 태어나셨습니다. 헤롯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가장 저주스런 십자가형으로 그 분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환영하고 영접해야 할 그분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경배해야 할 그분을 인간들은 죄의 속성 그대로 거절해버린 것입니다.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빛을 거부합니다. 죄가 있는 사람, 죄가 많은 사람, 정직하지 않은 사람, 불의로 가득찬 사람은 의가 오면 무섭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둑이 경찰만 보면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의, 진리, 빛을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빛이 올 때 자기 양심을 찌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 오래 있던 사람은 태양 앞에서 눈을 뜰 수 없습니다. 빛이 찌르므로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양심을 찌르므로 양심이 마비된 사람은 예수를 거부합니다. 자기의 악하고 더럽고 추한 모습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나 빛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빛이 오는 것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습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들어오면 나쁜 짓하는 사람들이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같이 탈세하고 훔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그 사람으로 인해 자기들이 노출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 직장에 들어오면 그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내모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빛을 저주하고 눈을 감고 등을 돌립니다. 어둠의 옷을 이중삼중으로 입습니다. 자기의 불의를 감추기 위해 빛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이라면 두겹 세겹으로 장치를 합니다. 참 빛은 자기를 찌르기 때문에 싫습니다. 그래서 거짓 빛으로 위장합니다. 사람들이 거짓 빛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기 양심을 찌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편한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자기를 야단치고 정체를 밝히고 실수를 드러내는 사람은 꺼려합니다. 이것은 마치 술과 마약처럼 내 죄를 합리화시키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대신에 스스로 창안해 낸 사상, 철학, 종교 또한 마약 같은 것입니다. 거짓 빛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1:9

우리는 여기서 빛의 특성 몇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감추인 것을 드러나게 하는 역할입니다.

빛의 다른 특성은 혼합물이 없는 것입니다. 빛은 언제나 순수하고 투명합니다. 빛에는 불순물이 없습니다.

빛의 또 다른 특징은 어둠을 밝히고 사물을 관통하는 것입니다. 빛 앞에는 어둠이 무력하고 모든 단절, 혼돈이 사라집니다.

나아가서 빛은 따뜻합니다. 빛은 얼어붙은 것을 녹이고 위로하고 보호하며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빛은 우리를 안내해 줄 뿐만 아니라 경고를 해주기도 합니다. 잘못된 길을 비춰서 가지 못하도록 하고 방황할 때, 길을 잃었을 때 빛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가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빛, 등대입니다. 그러나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이 빛을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9절에서 한 가지 더 발견하는 것은 그 빛이 각 사람에게 비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빛은 일반적으로 태양빛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비춰지는 빛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춰지는 참 빛입니다.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나 한사람을 향해 비춰지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빛이라면 누구 뒤에 숨으면 그 빛을 받을 수 없지만 예수님의 빛은 내가 숨든 숨지 않든 간에 나 한사람을 완전히 비추는 빛입니다. 구원은 온 인류에게 주는 일반적인 특성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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