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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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1:4-6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분이 생명의 원천이 되십니다. 그 생명 때문에 오늘 이 지구에 있는 모든 만물이 소생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생명을 지탱하는 것도, 우리 영혼이 영원토록 살 수 있게 된 것도 생명의 원천이신 말씀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 생명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4절 하반절에는 이 생명을 우리가 볼 수 있는 말로 바꾸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은 눈에 안 보이지만 빛은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이 빛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빌딩에 가려져 곰팡이가 피어 있던 음지도 햇살이 비추어 들기만 하면 1, 2년 내로 잡초들이 우거지 야생화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뜰로 바뀝니다. 벌 나비가 쉴새없이 날아드는, 생명의 환희가 넘치는 동산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햇살이 비치는 곳마다 이와 같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처럼 말씀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을 보이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가시는 곳에는 생명이 태어납니다. 그 분이 가시는 곳에는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곳에는 거짓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참된 것이 참된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은 빛이 되는 것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5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표현의 더 정확한 번역은 ‘이기지 못하더라’입니다. 다시 말하여 "빛이 어두움에 비추었으나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니까 모두가 이 빛을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빛으로 인해 자기들이 감추고 싶었던 온갖 더러운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핍박했습니다. 처음에는 회당에서 설교하게 했는데 나중에는 못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틀이 될 때까지는 자신들의 모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삼일째 되던 날 그들은 참 빛을 소멸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빛은 이전보다 더 밝게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나 어둠이 빛을 없애지 못했고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빛을 싫어합니다. 우리도 바르고 분명할 설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지만 정말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직도 계속 어둠 가운데 살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정욕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더러운 생활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1:6

여기에서 소개하는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1, 2, 3서와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아니라 세례 요한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무척이나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한결같이 랍비 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헬라 사회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나름대로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세례 요한만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사들과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는 세례 요한 밖에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띠고 보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동시에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 제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선한 뜻을 두시고 삶을 인도하십니다. 삶의 현장에서 자부심과 사명을 갖고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세례 요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11:11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닦고 그분을 우리에게 소개하기 위해 온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잘 만날 수 있도록 높은 산은 낮추고 낮은 골짜기는 높이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에 대해󰡐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소리의 특징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소리는 메시지를 전한 후 사라집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의 삶 전체를 통해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3:30

NIV :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Living Bible : He must become greater and greater, and I must become less and less.

배경(요3: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눅3:15-17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기 의견이 반영되지 않거나 자기 생각이 무시당하면 화를 냅니다.

세례요한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님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다가오자, 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기뻐 뛰놀 정도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밝혔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예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1:31

요한은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결코 평안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리속은 예수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요한복음은 1장에서부터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말씀, 빛,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합니다. 그 후에 세례 요한을 언급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직접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장애물들을 치웠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역할이 필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사람들 눈에 장애물이 되어 전도를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교인이나 교회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마십시오. 장애물을 치우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이 말을 더 깊이 묵상해 보면 내 능력이나 탁월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라고 말씀하신 까닭은 탁월한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무식하고 건강이 좋지 않으며 나이가 많을 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명과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미움을 받아 일찍 죽었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유하게 오래 살아도 인생 목적과 의미가 없이 사는 사람은 허무하고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있지만 목적이 없는 삶이 방황입니다. 지성적으로 방황하는 사람들, 권력을 지닌 채 방황하는 사람들, 모든 것을 소유했으면서도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삶의 목적이 희미한 소유는 방황을 낳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누릴 지라도 초조한 삶, 끙끙거리며 잠 못 이루는 삶을 삽니다.

행복은 소유가 많은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삽니다. 오래 사는 사람이 아닌 자기의 사명대로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6절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그가 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은 특별한 대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설교가 불처럼 강렬해서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질 만큼 존경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3:15

사람의 본질적인 유혹은 신이 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높은 자리에 오르면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합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합니다. 오만한 자세로 인권을 유린하고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가난한 자, 억울한 자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모든 사람 꼭대기에 군림하려는 것이 신이 되려는 유혹입니다.

결혼의 의미를 망각하고 부인을 종처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원들 위에 군림하며 왕처럼 행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는 특별하다는 이런 모습들 또한 신이 되려는 유혹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낮은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남을 지배하지 마십시오. 인권을 유린하지 마십시오. 어떤 높은 자리에 있을 지라도 항상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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