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6-20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인들을 만나서 하신 말씀 :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 이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이 명하시던 산에 모였습니다.
16절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열두 명이 아니라 열 한 명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빠졌습니까? 자살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참 잘했습니다. 그러나 끝을 잘못 맺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작을 잘 합니다. 그러나 끝을 잘못 맺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예수님을 팔게 되었고, 그 결과 자살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첫째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나 사탄은 교만한 자를 사용합니다.
둘째 이유는 가룟 유다의 생애를 살펴볼 때 자기주장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의견, 자기 생각이 많습니다. 그리고 항상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었습니다. 그의 사고와 의자가 언제나 부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을수록 내 뜻, 내 주장, 자기 소견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셋째 이유는 가롯 유다는 야망(꿈이 아닙니다)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있었습니다. 말을 정의롭게 합리적으로 잘 합니다. 그러나 그 동기 깊은 곳에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12:4-616절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부르실 때 예루살렘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부르시지 않고 갈릴리로 부르셨으까요? 여기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예수님에게도, 기독교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장소입니다. 모든 사건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예루살렘 가까운 곳인 베들레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곳도, 부활하신 곳도 예루살렘입니다. 기독교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오순절 사건도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부르지 않고 갈릴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의 고향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울며 함께 웃고 기적을 베풀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던 그 곳이 갈릴리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갈릴리가 필요합니다. 일할 수 있는 예루살렘도 필요하지만, 내 영혼을 깊이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비밀스러운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갈릴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외향적이고 사건 중심이라고 한다면, 갈릴리는 내면적이고 영적인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사건 중심인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을 부르시지 않고, 영적인 변화의 산실인 갈릴리를 택하셔서 제자들에게 제2의 탄생이 있게 하시고, 제2의 사명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다시 제2의 선택, 제2의 부름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의 부름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의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 갈릴리에서의 예수님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은 어떤 경험을 합니까?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마28:17갈릴리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없습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는 것입니다. 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된 것은 3년간의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성령 세례를 받은 이후에 그들이 변화되어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도덕적 예수님, 종교적 예수님이십니까? 여러분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시는 예수님, 여러분의 성격 하나 고치실 수 없는 예수, 인격 하나 고치실 수 없는 예수님이십니까?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녔고,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 변화가 있었습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변화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뵈었을 때, 제자들에게는 두 가지 반응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 제자들의 첫 번째 반응은 경배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 자리에 엎드려 발을 붙잡고 경배했던 여인들과 같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일어납니다. 순서에 따라서 “다 같이 묵도합시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다 같이 찬송 합시다” 하면서 설교하고 기념하고 끝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진짜 예배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부터 시작됩니다.
또 다른 반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는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의심하는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이 지상 명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만 아니라면 어떤 허물과 실수와 부족함이 있어도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셔서 그들을 쓰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언제 변화를 받았습니까?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은 이후입니다. 겁을 내고 도망을 갔던, 의심하던 제자들이 성령의 불에 녹아져서 순식간에 새 사람으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모두가 위대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복음을 위한 순교자요, 사랑의 화신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믿음이 조금 부족하여 의심하여도, 믿음이 흔들려도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고쳐 쓰실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옷 입혀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세 가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18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18첫 번째 메시지는 예수님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셨습니다. 이전까지는 하늘의 권세만 가지셨습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시115:16"(마귀가)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눅4:6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늘의 권세만이 아니라 마귀가 가졌던 땅의 권세까지 모두 가지셨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메시지는 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지상 최대의 명령, 선교 명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명령을 의심하는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열 한 명의 사람들, 비겁하고 변덕 많고 큰 소리 잘치고, 뒤로 가서 딴 짓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엄청난 명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믿음이 좋으셨다는 사실이 놀랍니다. 어떻게 이 명령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맡기고 하늘로 승천하셨을까요? 이 지상 명령, 선교 명령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핵심적인 세 가지 명령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문화명령"
창1:28"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삶의 명령"
요13:34문화 명령, 삶의 명령에 이어서 세 번째 중요한 명령은 선교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이 선교 명령 속에는 문화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의 명령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 명령은 지상 최후의, 최대의 명령인 것입니다.
교회가 왜 존재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는 선교 명령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결혼도, 사업도, 건강도 모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명령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랑할 힘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는 전도할 힘도 없습니다. 주님은 ‘너는 순종하고 기도하고 믿고 나아가기만 해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한다’고 하십니다. 누구를 사랑하고 전도하는 것은 내 인격과 내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과 순종을 하나님께 내어 놓기만 하면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 명령입니다. 이것이 지상명령입니다. 그래서 선교 명령을 하신 주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이다. 네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명령이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오늘, 주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명령, 인류 최대의 명령, 최후의 명령, 인간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명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네가 순종하기로 결정했느냐? 내가 끝까지 책임지겠다. 조직이 없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사람이 없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자본이 없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정말 이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명령인 줄 알고 순종하고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네 생애가 형통할 것이다. 방법도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너는 믿고 나아가기만 해라”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주위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습니까? 지구 도처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고, 테러, 학살, 고문, 경제적 불황, 도덕적 문화적 타락, 마약, 폭력, 부정부패, 환경오염, 핵, 에이즈 등 수많은 위기 앞에 인류는 직면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세상을 향하여 명령하십니다. “가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021년 9월 26일 오전 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