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28:7-9
천사의 메시지를 들은 여인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활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 그리고 지식의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빈 세마포입니다. 무덤의 돌 문이 굴러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인간의 이성과 상식, 경험으로 믿을 수 있는 것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과 이성, 상식과 경험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응함을 믿으시면 아멘!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18-25이성을 믿지 말고 약속을 믿으십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앞에 감각과 이성, 상식과 경험을 무릎 꿇읍시다.
마태복음에는 여인들의 영적 상태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마28:8첫째는 무서움이요 둘째는 큰 기쁨입니다.
왜 무서워합니까? 너무나 충격적이기 때문에, 이성과 경험과 지식으로는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났습니까?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기적을 믿는 신앙입니다.
기적을 믿으시면 아멘!
여호와께는 불가능이 없으심을 믿으시면 아멘!
하나님께는 문제가 크냐 작으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큰 문제,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도 하나님께서는 다 해결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8:8-12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모든 것이 캄캄하고 절망적으로 보일 때, 기적을 기대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죽은 신앙, 썩은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신앙이 도덕화되고 신앙이 철학화되고 교리화된 신앙입니다. 이성과 상식으로 믿을 수 있는 것만 믿는 신앙입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살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목격하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목격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내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기도하다가 용서했다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성품을 고칠 수가 없었는데 성품이 고쳐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나는 이제 담배를 끊었습니다” “나는 술을 끊었습니다” “나는 마약을 끊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도 부활 신앙입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건은 죽은 사건이 아닙니다. 살아 움직이는 사건입니다. 무엇인가가 변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여인들의 마음 속에 이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움, 다른 한편으로는 큰 기쁨, 이 두 세계 속에서 그들은 현재 갈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믿으려고 하지만 잘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심하면서 믿고 믿으면서도 의심합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과 같습니다.
예인들은 부활을 목격했지만, 십자가를 보고 두려워했던 제자들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못 박혔던 손을 만져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어도 옛 직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적인 신앙입니다. 육적인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언제 깨어진 줄 아십니까?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은 이후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나니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관원이 무섭지 않습니다.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할 때마다 기적과 능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은 능력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무엇과 만나야 합니까? 오순절과 만나야 합니다. 부활을 믿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부활을 지식으로만 믿을 때 신앙 고백은 될 수 있으나 능력은 안되는 것입니다. 부활이 능력이 되려면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 구원의 기초요, 근거요, 전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오순절의 성령 세례를 받을 때에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두려움과 큰 기쁨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뛰어갔습니다. 신앙은 무덤을 떠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인간적으로 헌신한 사람들은 무덤을 좇아가는 신앙입니다.
단지, 예수님의 시신만을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니 시신 자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무덤에 갇힌 것이 아니라,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시신인 예수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시신이 누워 있는 무덤이 아니라,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입니다.
부활 신앙은 순종의 신앙입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마28:7-8신앙의 최고봉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5-12이렇게 천사의 말을 듣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급히 뛰어가고 있는 여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28:9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첫 번째 하신 말씀이 “평안하뇨”입니다. 이 말씀은 “평안이 그대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뜻입니다. 절망하고 좌절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주시는 말씀은 ‘평안’입니다. 왜 평안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세력을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불의와 부정을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너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전쟁은 끝났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평안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닙니다. 하늘이 주는 평안입니다. 세상의 지위나 명예, 물질로 얻어지는 편안이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편안한 생활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은 하나님만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로 말미암는 선물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27오늘 우리는 이 평안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평안하뇨?” 하셨을 때에 여인들은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여인들의 반응은 먼저 무릎을 꿇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경배했다는 것은 겸손과 예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을 때에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 구유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멀리서 찾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면서 아기 예수님께 무릎 꿇고 경배 했습니다 영광스러운 그분께 경배한 것입니다. 모든 교만과 높아진 마음을 꺾고 무릎 꿇어 그 분의 발을 붙들고 경배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있고, 돈이 있고, 지위가 있고, 학식이 있고, 세상의 명예가 있기에 교회에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올 때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사람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할 때 참된 예배는 이미 없습니다. 봉사하러 오셔야 합니다. 형제를 지배하러 오면 안됩니다. 형제를 섬기러 오셔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지위를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의 발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예배 행위와 똑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왜 피곤합니까?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없고 사역만 있을 때, 우리의 신앙에는 원망과 불평과 갈등이 연속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발을 붙들고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발을 붙들고 경배하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21년 9월 24일 오전 6: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