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27:61-66
어떤 분은 십자가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십자가란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죄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그 대가로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십자가를 묵상해 왔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을 시체를 달라하여 자신의 새 무덤에 장사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을 떠나지 않고 무덤을 향해 앉아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여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여인들이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좇았던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다 뭔가를 바라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병 고침을 바라고, 귀신을 쫓아 주심을 바라고, 예수님의 덕분에 한 자리 할 것을 바라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저 멀리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자신의 유익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다 도망을 갔지만,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왔던 이 여인들은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제자들도, 아리마대 요셉도 다 떠났는데 사랑하는 예수님을 잊지 못해 무덤 앞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여인들에게서 참된 사랑과 믿음, 헌신, 그리고 용기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몰론 분명한 것은 이 여인들도 십자가의 비밀을 다 깨달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부활하실 것을 믿었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크게 기뻐해야지 근심할 리가 없지요)"
눅24:1-4이 여인들이 끝까지 남아 있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여 앉아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무덤에 갇혀서 아무 능력과 기적도 보여 주지 못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사랑하였기에 그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일이 있으면 열심을 냅니다. 일이 없으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를 주면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자리를 주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입장을 세워주면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입장을 세워주지 않으면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은 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일이 있거나 없거나 주님을 향하여 있는 사람, 교회 봉사할 때에도 직분이 주어졌거나, 주어지지 않았거나 주님이 너무 좋아서, 주님을 너무 사랑하여 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일, 사역에만 머리가 세뇌되어 있습니다. 사역이 있어야만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하고 계십니까? 부부란 무엇입니까? 그저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나, 기분이 나쁠 때나 한결같이 같이 곁에 있는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니다.
이 여인들에게서 발견하는 아름다운 믿음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나 빚진 것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체를 향하여 무덤을 향하여,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눈물 흘리면 넋 빠진 채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감사와 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일 중심적입니다. 거기에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일은 있을지 몰라도 주님과 나와의 은밀한 사랑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분이 큰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사랑하고, 그 분이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실 때에도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셔야만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내 몸이 병들고,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 주님을 멀리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아도 주를 위하여, 영광을 받아도 주를 위하여, 수치를 당해도 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 바로 이 여인들과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님을 향하여 앉아 있는 믿음이 복된 믿음인 것입니다. 모두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쁘고 분주할 때에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 앉아서 새벽에도 저녁에도 기도하고 봉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인들이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무덤을 향하여 앉았을 뿐,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던 이 여인들이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은밀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일을 한다. 무슨 책임을 맡았다” 이런 것은 그 다음 얘기입니다. 참으로 주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는 바로 이러한 관계입니다.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마27:62-64우리는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고, 아리마대 요셉도 아니었고, 끝까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던 여인들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신경 쓰고 기억한 사람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정죄하고 빌라도에게 처형을 요구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설입니까?
여러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교리에 대해 여러분보다 이단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어리석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예민하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을 구원파가 알고 기독교를 공격해 왔습니다. 몇 년 몇 월 몇시에 구원 받은 것을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며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느낌이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한 것입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이 재림에 대하여 무지했을 때 다미 선교회가 일어나 몇 년 몇 월 몇 시에 주님이 재림하신다며 많은 성도를 미혹함으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말하면 이단시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를 찾아와 예수님의 무덤에 특별 경계를 부탁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기를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부활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막16:10-11"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막16:12-13심지어 부활을 주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눅24:36-37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왜 빌라도를 찾아왔을까요? 불안하니까 찾아온 것입니다. 죄 없는 예수님을 정죄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들도 분명히 아는 것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바라던 대로 예수가 죽었는데도 마음이 전혀 편치가 않았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을 정죄한 이후 그들은 불안해서 잠조차 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목적을 다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재산을 다 빼앗았는데도 평안이 없습니다. 원하는 권력을 가졌음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불안합니다. 초조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요 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세계 최강의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를 찾아온 것입니다.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마27:63-64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도 도망을 갔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러 오겠습니까? 만약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잃어 버리면 처형을 받기 때문에 빌라도의 허락 없이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무덤 근처에 얼씬 거리지도 못하도록 지켰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러 왔다면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과 싸워서 적어도 몇 명은 죽어야 했는데,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한 명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아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27:65-66무덤을 인봉하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힘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약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해도 로마 군병들이 지키고 무덤 문을 인봉했으니 무덤 문을 열고 나오실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28:1-4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으시면 열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시면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어떤 인간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가장 강한 자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과 함께하시니 다니엘의 대적들이 다 모여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 집어넣고 그 입구를 인봉해도 다니엘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무덤에 계십니다. 그러나 결코 무덤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삼일 동안 안식하신 예수님은 이제 곧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